



생일은 언제 축하받아도 기쁜 날이다. 자신에게만 특별한 날일지라도 함께 있어 주는 이들이 같이 웃어준다면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해마다 다른 모습으로 축하받는 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 날만의 추억이 쌓이니까. 늘 그의 생일은 친구들과 함께 북적였고, 시끄러웠다. 그 소란스러움이 카미나리는 좋았다. 그 속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올해는 평소보다 더 특별한 생일이 될 거라 장담했다. 물론 웅영에 들어와서 새로운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는단 의미로 특별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귄 사람에게 축하를 받을 수 있기에 더욱 소중한 생일로 기억에 남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다시 설명해줄래요? 사고가 안 따라가요. 형님."
"형님이라 부르지 말고. 나도 세로라니까."
"아니, 형님. 내가 아는 세로는 이렇게 어른스럽진 않았어요. 분명 나보다는 크고, 다부지고, 조금은 어른스러웠지만."
그에 대한 칭찬으로 한 줄 가득 늘어놓아 버렸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 눈앞에 있는 어른이 세로 본인이 맞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사건을 정리하자면 카미나리는 조금 전까지 1층 라운지에서 세로와 같이 있었다. 곧 12시가 되는 시점을 노려 카미나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쩍 세로의 눈치를 살피며 방으로 오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는 잠시 자기 방에 들른 뒤 오겠다고 말하곤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얼굴에 잔뜩 웃음을 머금은 채 한걸음에 방으로 달려온 카미나리였다. 그런데 잠시 뒤 다음 날이 된 12시에 맞춰 방으로 들어온 얼굴은 자신이 아는 얼굴이면서 어딘가 다른 누군가였다. 그는 덤덤하게 방을 살피다 카미나리와 눈을 마주치고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해, 카미나리. 라고. 세로와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말투로 똑같은 웃음을 짓는 그를 카미나리는 황당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개성사고야. 잠깐 과거의 나와 바뀐 거뿐이고 곧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
평범하게 다른 날,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카미나리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달려들어 미래의 세로라 주장하는 이 사람에게 미래의 일에 관해 물어봤을 거다. 미래에 세로는 어떤 히어로가 됐고, 자신은 잘하고 있는지.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히어로 랭킹 1위는 누구인지. 미래에는 어떤 문화가 발달했고, 지금이랑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둘은 여전히 사귀고 있는지.
그렇지만 오늘은 아니다. 세로를 만난 후 처음으로 축하받는 생일인데 그가 사라졌다. 미래의 세로가 대신 있다고 해도 듣고 싶은 건 이 사람이 아니었다. 12시가 됐을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그라고 생각하니 잔뜩 긴장해버려 카미나리는 멋대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축하의 말을 듣기도 전에 입가가 귀에 걸리려는 걸 멈추려 노력했다. 그런데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그가 아닌 미래의 세로라니. 이만큼 이상한 일도 없다.
"내 세로는 언제 돌아와?"
"개성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으니까 아마 금방 끝날 거라 생각하지만. 그나저나 우연이네. 여기 왔을 때 책상 위를 보는데 선물 상자랑 같이 달력에 너 생일이라고 표시되어 있더라고. 나 있던 곳도 오늘이 카미나리 생일이었는데."
"함께 있었어?"
자연스레 반말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 채 카미나리는 오로지 자신의 미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혹시 미래의 자신도 오늘 세로에게 축하받은 걸까? 지금은 둘이 바뀌었으니 설마 원래의 세로가 미래의 자신을 축하하는 경우가 된 건가. 기분이 술렁이고 불온하게 심장이 뛰었다. 자신은 아직 세로에게 축하받지 못했는데 미래의 자신이 먼저 축하를 받는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미래의 우리는 계속 함께 있을 수 없어."
생각에 잠겨있는 카미나리의 정신을 깨우듯 미래의 세로가 툭 내뱉었다. 그 말의 의미를 카미나리는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을 짓는 카미나리를 보며 세로는 어딘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매년 너의 생일을 챙겼어. 물론 내 생일도. 네가 매번 똑같이 해준다면서 시끄럽게 굴고. 어딘가 이상한 생일 선물을 가져오고. 근데 그게 싫지 않았어. 너랑 같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일상이 됐으니까."
이 세로가 언제의 세로인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졸업한 후, 히어로를 하고 있는 세로임에는 틀림없었다. 어른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카미나리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우리는 계속 함께 있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같은 직업이고, 같은 지역에서 일한다면 계속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사실 그렇게 크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카미나리에게 미래는 너무 먼 이야기였고 지금만 생각하기도 벅찼다. 지금 매 순간에 집중하는 게 아이자와 선생님이 말하는 효율적으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이렇게 미래의 세로를 마주해버린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해버리게 된다. 앞은 알 수 없으니까.
"하나만 알려줘. 오늘, 내 생일 축하해줬어?"
그 대답을 들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축하해주는 게 세로였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세로라면 알아줄 거란 생각에 카미나리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직 만나서는 말 못 했어."
"…그랬구나."
"가던 중이었어. 적어도 오늘은 같이 있고 싶으니까."
왜 안심해버리는 걸까. 내가 아닌데. 적어도 몇 년 뒤의 이야기인데. 세로에게 이전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나를 좋아하냐고. 사귀게 된 것도 흐름상 어쩌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다지만 설마 세로랑 이렇게 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연인이 챙겨주는 생일이라니. 사귀는 사람이 없던 시절에 몇 번이고 상상해봤지만, 막상 당일이 다가오니 두근거려서 며칠 동안 기분이 붕 떠 있었다. 세로와 로맨틱을 상상하긴 어려웠지만 적어도 그가 제일 먼저 축하해준다면 하고 기대했다. 같이 있어 주기만 한다면.
"세로는 나 좋아하지?"
그에게 확인해서 뭐 한다고. 그런데도 듣고 싶어서 카미나리는 평소보다도 더 위로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맞췄다. 그런 카미나리의 사고를 읽은 건지 세로는 작게 웃으며 카미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제대로 좋아하니까."
"내 세로는 그런 말 잘 안 하는데."
"나 제법 표현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땐 아마 쑥스러워서 그랬겠지."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어른이 된 세로는 다 커졌구나. 신장도, 손도. 이상한 부분에서 감탄하다가 한편으론 자신은 안 컸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가 안심하게 해준 걸까, 뭔가 마음이 가벼워져 불안감이 사라졌다. 미래의 세로는 잠시 시간을 확인하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곤 포장된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과거의 내가 준비한 선물이야. 내가 전해주는 건 그렇지만 곧 바뀔 거 같으니까.“
받아든 선물은 묘하게 가벼웠다. 그에게 받는 첫 선물이다. 이런 형태로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서 카미나리는 한참을 그 선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래의 세로는 나한테 뭐 준비했어?"
"그건 미래에 아는 게 좋지 않아?"
"미리 알아두는 것도 재밌잖아~"
미래의 세로는 한참 망설이더니 다른 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쥐어 펼쳐보았다. 뜻밖의 물건에 카미나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열쇠?"
열쇠가 선물이라니 뭔가 자물쇠라도 여는 열쇠인가? 보기엔 평범한 집 열쇠처럼 보였지만 그게 왜 선물인지 카미나리는 아무리 고민해도 세로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런 카미나리의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세로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미래의 네가 똑같은 반응이 아니길 바라야겠네."
"적어도 미래의 나는 머리 좋으니까 괜찮지 않아?"
"아니. 너의 미래에 왜 그렇게 관대한데. 지금이랑 너랑 별로 다를 거 없는데."
"엑. 나도 분명 성장했을 텐데? 히어로 하니까 지금보다 더 멋있고 머리 좋고 그렇지 않아?"
경악한 카미나리의 표정에 세로는 웃음이 터진 듯 한참을 배 잡고 웃었다. 호탕하게 웃는 세로를 보며 카미나리도 결국 웃어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어른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역시 세로란 느낌이 들었다. 같이 있으면 어딘가 마음이 편안해진다. 미래에서도 계속 이럴까? 적어도 지금 느끼는 느낌으론 미래의 자신은 분명 괜찮을 거란 믿음이 생겨난다.
"빨리 내 세로 보고 싶다!"
"나도 카미나리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으니까 바뀌면 좋겠네."
"미래에서도 잘 부탁해, 세로!"
세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그는 사라졌다. 자신의 원래 위치를 찾듯 미래의 세로가 사라지자 바로 그 자리에 원래의 세로가 나타났다. 아까 세로보다 안정적인 높이. 원래 시선이 맞는 곳에 그의 눈이 있다. 멍한 표정으로 아직 정신이 어지러운 듯한 세로를 보며 카미나리는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끌어안았다. 밀어붙인 중압감에 놀랐는지 세로가 흠칫 몸을 굳히는 게 느껴졌다. 미래에서 뭔가 듣고 온 걸까?
"세로. 나한테 할 말 없어?"
눈을 빛내며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밀착시켰다. 벌써 시간은 12시에서 한참 지났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제일 먼저 축하를 듣고 싶은 사람은 세로니까. 그가 말해준다면. 세로는 물끄러미 카미나리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해, 카미나리."
"그럼 선물 줘."
이미 그의 선물은 받았다. 미래의 그가 대신 전해주었으니까. 하지만 물건보다도 지금은 더 받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런 카미나리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세로는 카미나리의 등을 감싸 가까이 끌어안고는 상냥하게 키스해주었다. 그런 그의 키스를 받으며 카미나리는 눈을 감았다.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열쇠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그들이 함께 있기를.
"그럼 이제 세로의 선물 풀어봐야지~"
"너 왜 이거 가지고 있는 거야.
"글쎄. 왜일까나~?"
말끝을 늘리며 봉투를 풀어본 카미나리는 선물을 보고 웃어버렸다.
"이거 너무 직접적 아니냐?"
"챙겨주는 것만으로 기뻐해."
"그럼 나머지 더 받아버릴 거야."
전기 모양의 열쇠고리를 보며 카미나리는 세로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오늘 하루는 아직 시작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