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너무 가벼운 거 아니야?”
라고, 동급생인 지로 쿄카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 번… 아니 상당히 많이 언급한 바가 있었다. 가벼운 남자. 그녀가 ‘재밍 웨이’라는 별명 외에 붙인 또 다른 호칭이었다.
음! 허나 그녀가 꺼낸 말이 결코 좋은 말이 아닌 것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카미나리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능구렁이 마냥 웃음으로 넘겼다. “나도 안다구.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아~?” 너무 관심 있으면 내가 곤란하다구. 라는, 그의 말에 대꾸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으이구. 지로가 눈살을 더 구긴다. 정적만이 가득한 곳에서 카미나리는 유일하게 웃었다. 으하하. 꿋꿋하게 웃고 또 웃는다. 가볍게.
◆◇◆
카미나리 덴키는 기본적으로 가벼운 남자였다. 자타공인 주변인들이 인정하는 가벼운 남자. 가볍다는 게 단순히 그의 체중을 뜻하는 게 아닌 카미나리의 성격과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애초에 부모님부터가 가볍던 사람들이었다. 카미나리 부부는 1년 간의 짧은 연애 끝에 결혼의 골로 들어간 독특한 짝이었다. 왜 이 두 사람이 독특하다고 묻는다면 바로 부부가 교제하게 된 계기였는데, 카미나리는 이 이야길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적부터 질리도록 들어왔었다.
- 인사하려고 네 아빠랑 악수를 했는데 말이야. 손가락이 닿는 순간 짜릿~! 하고 정전기가 났다니까 그러네! 정말 로맨틱하지 않니!
그야. 두 분 다 전기 계열의 개성인데 정전기가 안 일어날 확률을 찾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대체 어디가 로맨틱하다는 건지. 꺅꺅대며 어쩔 줄 모르는 커퀴 부부를 보며 카미나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게다가 겨우 정전기 한 번으로 결혼까지 간다니 이 얼마나 특이한 경우인가.
…뭐. 그 어처구니없는 우연(이 잉꼬부부 둘은 운명이라 잡아떼고 있지만)에 의해 카미나리 덴키라는 소년이 탄생한 것이겠지만. 심지어는 카미나리 “덴키”라는 이름도 전부터 고대하며 그들이 지었던 것이 아닌, 카미나리가 태어나는 순간과 동시에 천둥이 콰르릉 치는 바람에 놀란 부부가 동시에 생각해낸 이름이었다고 한다.
고작 천둥 한 번 때문에! 그때 바람이라도 세게 불었으면 카제風마루라도 됐겠어 아주!
부모부터가 이렇게 털털한 사람이니 자연스럽게 카미나리도 태생부터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카미나리는 그 가벼움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태생부터 그러하듯 자신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무거운 것은 자신에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진지하다거나 진중하다거나, 카미나리 덴키와는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또 촌스럽게만 느껴졌다. 쓸데없이 무겁게 여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다 제 책임으로 몰아오는 것을. 자자.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구. 인생 한 번밖에 없는데. 피곤하게 살면 아깝잖아. 라고 말하며 카미나리 덴키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가볍게 살고 싶었다.
그 생각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 녀석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무겁게 생긴 놈..’
참고로 무‘섭’게 가 아닌 무‘겁’게 가 맞다. 바쿠고 카츠키라는 이름을 가진 동급생의 첫인상이었다. 무거운 걸 썩 달가워하지 않는 만큼 무겁게 생긴 사람도 썩 좋게 보지만은 않은 카미나리였다. 그랬기에, 바쿠고 카츠키는 자신과 그리 친해질 수 없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아앙? 뭘 봐 얼굴병신. 꺼져.”
“와~ 바쿠고 카츠키군. 말도 어쩜 그리 못나게 하냐?” “시비 털거면 꺼지라고.”
이 남자는 무거운 남자다. 성격은 말도 못하게 더러웠고 세상 모두가 자기 위주로 돌아가는 남자였기에 학교에서 강조하는 팀플레이는 그에게 바라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바쿠고는 무겁다. 카미나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카미나리처럼 가벼이 넘어가는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멋대로에다 화만 버럭 내는 다혈질이어도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는 조심성 많은 남자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항상 사고를 분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남자. 실패와 패배는 절대코 용납하지 않고 떨어지면 다시 시도하는 사람. 한 마디로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절대 못 친해질 것 같은 놈.’ 마지막 바쿠고를 향한 인상이었다. 못 친해지지. 절대로. 암 그렇고 말고. 자발적 아싸를 어찌 친해지겠소. 그럴 마음도 없고. 위에 말했듯이, 카미나리 덴키는 무거운 걸 선호하지 않았으니.
“바쿠고! 내일 단련실 수업 끝나고 같이 안 갈래?”
“거기 시끄러워서 싫어.”
“왜에. 다들 그곳에 있는 걸. 같이 훈련하면 즐겁잖아.”
“ㅗ”
참. 무거운 바쿠고 카츠키. 그리고 그런 그를 지지하며 서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더랬지. 옆에서 환한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카미나리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키리시마 에이지로. 그는 바쿠고만큼 무거운 사람은 아니었으나, 다른 면으로 무게감 있는 점을 몇몇 확인할 수 있었다. 친화력이 좋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매일매일 성실하고 근면성 있는 모습을 유지하는 키리시마를 보면 카미나리는 그만 넌더리를 치고 말았다.
남자다움. 용기. 끈기. 시도. 열망. 대화할 때마다 한 번이라도 빼먹지 않은 날이 없다. 그는 남자다운 게 좋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런 사람을 얼른 만나고도 싶다고 말했다. 그렇담 여기서 나랑 대화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 아닐까나. 라고, 카미나리는 생각했다. 키리시마가 찾는 자와는 자신과는 정 반대의 타입이었으니. 어쨌든 이 남자는 피곤했다. 아마 키리시마와도 긴 인연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며 카미나리는 생각했다.
“오오. 그럼 나도 같이 가도 돼?” “오, 다 같이 갈까?”
“아 썅 진짜! 오지 말라고!”
그리고 피곤함과 피곤함의 사이에 껴있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세로 한타. 유일하게 카미나리가 나름 맞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세로와는 잘 맞는 편이다. 세로는 성격이 유한 남자였고, 적당히 말을 농으로 넘길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라 카미나리와 죽이 잘 맞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불편감이 없어 카미나리는 그와 만나 어울리면서 꽤 편안함을 느꼈다. 유일하게 같은 선에 있는 친구라고나 할까. 그런 동질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자신과 똑같은, 가벼움을 아는 남자 말이다.
여기까지. 카미나리 덴키가 평가한 남자는 총 세 명이다.
무거운 남자. 바쿠고 카츠키.
무거움을 느끼게 하는 남자. 키리시마 에이지로.
가벼움을 아는 남자. 세로 한타.
응응, 뭐어 보통 이정도지. 여기서 누군가와 가장 어울리기 편한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카미나리는 고등학교 생활을 최소한 안락하게는 못하더라도-히어로 육성 학교 중 최고인 걸.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다구.- 그의 친우관계마저 피곤하게 이루고 싶지 않았다.
그랬는데……….
“야야. 카미나리 바쿠고한테 좀 말해봐!”
“뭐? 내가 말한다고 갈 놈도 아니고….”
“당연하지.”
“혼자서 가봤자 뭐하냐? 아…. 설마, 아무도 없는 그런 곳에서 막. 어?”
“그 기분나쁜 제스처는 뭔데 간장 얼굴 개자식아!!! 뒤진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더라?’
가장 어울리지 않은 네 조합이 모이면 뭐라고 하는 거였지. 떠오르지도 않는 단어를 생각하려 애쓰던 카미나리는 바쿠고, 키리시마, 세로가 모여 있는 자리에 저가 껴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유에이는 이런 것까지 특별 취급일까. 어느새 가장 불편하고 가장 편한 조합이 한데 묶여 다니게 된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 세 명과 동시에 어울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어느새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게 돼 카미나리는 턱을 괴곤 투닥거리는 세 모습을 보며 낄낄 웃었다. 그러다 왜 지혼자 처웃냐고 버럭 소릴 지르는 바쿠고에게 혼이 났지만 그는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거운 것들끼리 모여 있으면 괜스레 불편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나 보다. 너희들만 예외인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카미나리는 이 조합이 마음에 들었다.
특이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줄곧 재미있겠구나,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분하고. 이렇게 처참하던가?
“뭐냐. 그 ‘나 생각하고 있습니다.’의 얼굴은.”
“앗 차거!”
카미나리의 뺨에 닿는 건 자판기의 탄산음료 캔. 세로가 캔을 흔들며 비죽비죽 웃고 있었다. 올 거면 인기척이라도 좀 내라. 네가 멍때리고 있어서 못 느낀 거야. 부루퉁한 얼굴로 카미나리가 그가 건넨 음료수 캔을 받았다. 차가운 온도가 손끝에서부터 느껴진다.
“진정은 좀 돼?”
그의 옆자리로 자리를 잡은 세로가 물었다. 될 리가. 카미나리가 대답했다.
“키리시마 녀석이 뭘 생각하는 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누군 알겠냐? 원래부터 열혈적인 놈이었잖아.”
난 갈 거야. 라고, 이미 결심한 듯 모두에게 말하던 키리시마가 있었다. 임간 합숙 때 빌런에게 납치된 채 행방불명이 된 바쿠고를 구하러 가겠다는 무모한 말을 토해낸 그였다. 무슨 그런 얼토당토도 없는 말을. 옳은 게 아니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겠단다. 잡지 못한 그를 잡기 위해 다시 가겠단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키리시마는 집합장소, 시간을 마지막으로 알려놓고선 마무리하듯 말했다.
- 오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가 틀린 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처럼 함께 하겠다면….
- 기다리고 있을게.
“갈 거야?”
세로가 물었다. 카미나리는 대답 대신 먼저 탄산음료를 들이켰다. 탄산의 쓴맛이 목구멍 너머로 흘러갔다. 카미나리가 천천히 캔을 쥔 손을 떨어트렸다.
“갈 리가 없잖아.”
“그렇지.”
“우리들이 갈만한 장소도 아니고. 전투허가는 풀렸고. 가서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고…. 너무 무모해. 바보 같은 짓이라고.”
“그렇지.”
“그런데…. 왜 그런데도 가겠다는 건지…. 그 녀석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렇네. 걔 가끔 너보다 멍청할 때가 많으니까.” “왜 멍청함의 기준을 나로 두는 거야 세로…. …어쨌든, 이번엔 정말 무모하단 말이야……. 얼마나 위험한데. 가끔 생각이란 걸 안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뭐?”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이유가 뭐야. 조곤이 묻는 세로의 얼굴에는 이미 카미나리의 대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니. 질문은 정말 쓸데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키리시마는 너무 무모했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늘여 놓았으며, 카미나리 저보다 멍청…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리고…. 카미나리 본인도.
“이성으론 안 된다고 아는 주제에…. 자꾸 키리시마가 꺼낸 장소랑 시간만 생각이 나.”
“그렇지.”
“무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나도 그 녀석을 구하러 가고 싶다고…!”
“응.”
“그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별반 도움도 안 되고 결과도 똑같았을 것 같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라는 생각이 자꾸 맴돌아서… 내 자신한테 화가 나!”
나는 왜 그 자리에 있었지? 보충조에만 속해 있지 않았더라면, 바쿠고랑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방해었을까? 그래도 조금은,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주 일말의 확률로 네가 납치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여러 생각이 겹쳤다. 키리시마도. 다른 애들도 이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꾹 참고 있는 걸까. 저마다 뭔가를 참아낸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 마디라도 터뜨리면 폭발할 것이라는 걸 어딘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렇게 잠잠한 시한폭탄을 숨겨두고선 키리시마를 떠나보냈다.
“몰라…. 이렇게 심오하게 생각하는 건 딱 질색인데.”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카미나리가 마른세수를했다. 캔을 만지고 있던 터라 손바닥의 시원한 감촉이 얼굴을 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입안에 담아두고 있던 말이 흘러나왔다. 결론은 그거였다.
결국 자신들은 가겠다고 한 발자국 앞서 걸어간 키리시마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런 그를, 나중에 어떤 얼굴로 보아야 할 것이며 저마다 무언가를 꿍쳐 놓은 듯한 얼굴로 돌아선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이며, 분명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라진 친구를 향해 어떤 말을 꺼내야 할 것인지.
“평소대로 해. 평소대로.” “…뭐? 그게 가능할 리가….”
“가능하잖아. 평소의 그 가벼웠던 카미나리 덴키군. 말야.”
“야!”
“의외로 모두가 그걸 원하고 있을지 모르거든.”
원한다니. 의미 모르겠어.
애초에 가벼움이 뭐였더라. 입학하기 초까지는, 그 설렁설렁함이 뭔지 잘 기억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USJ에 빌런들이 습격해 전력을 다해 그들을 쓰러트리려 했던 때였나. 체육제에서 모두에게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어 전력을 다해 참가했던 때였나. 합숙이 가고 싶어 고교 시험 준비 때를 제외하고 죽을 만큼 시험을 준비했던 때였나. 나 자신의 한계 돌파를 위해 임간 합숙에서 지옥 훈련을 했을 때였나. 처음으로 친구를 잃었을 때였나.
그 가벼움이 무엇이었더라.
어느새 무거운 놈들 주위에 둘러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다 잊어버렸다고, 내가 이제, 어떻게 평소처럼 해야 할지…. 라고 중얼거리는 카미나리를 보며 세로는 웃음 빠진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필요 없다니까. 너답게 하면 된다고 카미나리.”
그러니까. 그런 나다운 게 대체 뭔데?
◆◇◆
“…올마이트의 은퇴만 아니었다면 난 바쿠고, 지로, 하가쿠레 외엔 전원 제적 처리했을 것이다.”
“…그곳에 갔던 5명은 물론 파악하고도 말리지 못한 12명도, 이유야 뭐가 됐든 우리의 신뢰를 배신했다는 건 달라지지 않아.”
“정규절차를 밟고 정규적인 활약을 펼쳐 신뢰를 되찾아주면 고맙겠다.”
이상이다. 라고 말을 끝낸 아이자와 선생님은 먼저 발걸음을 돌렸다. 활기차게 가라니, 이 분위기에서 어떻게 들어가라는 거죠…. 카미나리를 포함한 나머지 아이들 모두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결국 갔구나. 아니. 갈 거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말이 맞다. 카미나리는 덩그러니 고개를 떨구곤 바닥에 시선을 내렸다. 알고 있으면서 제대로 말릴 수 없었던 것. 이 또한 배신이라 말할 수 있음을.
주변은 싸늘했다. 그 누구도 먼저 발걸음을 떼려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무거운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고민하고 있으면 그 순간이었다. 동시에 카미나리의 목덜가 잡혀 뒤로 끌려갔다.
“꾸엑!”
아니. 무슨 돼지 멱따는 소리마냥! 뒤로 질질 끌고가는 어마무지한 힘의 주인공은 바쿠고 카츠키였다. …라니, 바쿠고!? 왜! 그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콱 찌푸린 채 카미나리를 끌고 갔다.
“이리 와.”
“어? 왜! 싫….”
콱. 하고 째려보는 눈이 살벌하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질질질 끌려갔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게끔 수풀 뒤로 끌려간 카미나리가 당한 건,
“전기놈. 전기.”
“뭐, 뭐어?”
“3초 안에 최대치 방전 해라. 안 하면 뒤진다. 3…2…”
“자, 잠깐 뭔데!”
“1…”
“아아악 손 올리지 마. 알았어. 알았다고!”
결국 개성을 방출하는 카미나리는 그에 의한 리스크가 올 것임을 알면서도 쓸 수밖에 없었다. 왜 갑자기 자신을 잡아 끌고 개성을 쓰라고 한 것인지 카미나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뭐냐고. 최대치 전력을 사용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머리는 점점 더 하얘졌다. 생각이 둔해진다. 그 와중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쿠고가 가만히 카미나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나야? 그런 그를 보며 얼핏 그가 중얼거렸다.
그런 카미나리의 물음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바쿠고가 입을 열고선 말했다.
“필요하니까 등신아.”
뭐?
바쿠고의 말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정작 그가 저지른 행위는 꽤 효과가 있었다.
방전할 대로 방전하고 온 카미나리는 너덜너덜해져선 비틀거리면서 나왔고, 그런 카미나리를 보던 아이들은 너도나도 웃음을 터뜨리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조금 전까지의 정적만 가득했던 모습은 없었다. 다들 무거웠던 표정 대신 밝게 웃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마치 지금의 순간을 기다린 것만 같았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던 걸지도 모르지. 카미나리가 웨~이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이곳저곳을 쏘다니고 있으면 바쿠고는 터덜터덜 걸어 나와선 키리시마에게 돈을 쥐어주곤 나몰라라 홀라당 자리를 비워버렸다. 미안하다며 외치는 키리시마를 뒤로 아이들이 열광했다. 지로는 아예 웃다가 실신할 정도였다.
깔깔대며 웃는 아이들 뒤로, 조용히 미소짓고 있는 세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카미나리는 치켜세운 엄지를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고민할 거 없다니까. 너답게 하면 되는 걸. 라고, 어느 날 충고하다시피 가볍게 말했던 세로의 말이 떠올랐다.
왜 나야? 라고 묻던 카미나리에게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던 바쿠고가 필요하니까. 라고 답하던 게 스쳐갔다.
무거운 건 싫다. 눈치만 보게 되는 걸. 태생부터 가벼웠던 남자는 무거운 거라면 질색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유에이 고교에 들어와 이 녀석들을 만난 후부터는, 무겁고 가벼운 걸 따지는 걸 어느새 잊어버리게 되었다.
방이나 구경하러 가자며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짓했다. 카미나리! 하고 지로가 그를 불렀다. 하여간 개성 쓸 때마다 이러면 어쩌냐? 라고 쯧쯧 혀를 찼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꼼지락대던 손가락이 점차 멎어갔다. 하얗게 물들던 세상이 돌아온다. 눈앞에는 웃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가운데 키리시마가 소리친다. 세로가 손짓하며 말한다. 바쿠고는 이미 모습을 감춘지 오래. 그래도, 그들은 이곳에 있었다.
다들 같은 장소에 함께.
“야. 빨리 와!”
걸어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때로는 무거워도 좋고. 매일 가벼워도 좋아.
너무 무거우면 가벼운 게 필요해질 수 있으니 그땐 내가 옆에 있을게. 옆에 있어줄게.
늘 말했던 대로, 무거운 건 싫으니까. 더 이상 무겁게 생각할 만한 일은 하지 않을 거야.
이번에는 꼭. 후회하지 않을 만큼 너희들이 있는 곳에 서있을 수 있도록.
“카미나, 립… 푸흡, 너… 역시…. 히어로명… 바꿔라…!” “…그만 좀 웃지?”







